“컴포트존(**Comfort Zone**)에서의 28년, 그 후 2년간의 아웃바운드 존(**Outbound Zone**)을 향해”

이 문장이 지난 2년간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슬로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인우 님의 ‘브레이킹 루틴’을 보고 난 뒤 저의 가치관과 지난 28년간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인생의 방향성도 많이 바뀌기도 했는데요.

19살까지 누구나 고민하고 누구나하는 핑곗거리를 일삼으며, 그저 그런 대학교와 그저 그런 학교 성적을 받고, 평범한 회사에 첫 취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일이 익숙해지고, 4년 차가 되었을 때 ‘개발 다 혼자서 할 수 있네? 개발하던 거나 있던 걸로 계속하니 금방 하네?’라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게 될 무렵 저도 연봉 상승을 위해 이직을 준비했고, 수많은 낙방과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인제야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지금 내 수준이 어지간한 신입이 아는 수준보다 못하는구나’라는걸 깨닫게 된 것이 4년 차가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첫 번째 컴포트존을 알게 된 건 이때였습니다.

제 경력은 표면 장력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듯 물이 차올랐고, 점점 더 조급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위해 잠을 줄이고, 야근이 끝나고도 아티클과 제가 개발해 왔던 기술들을 조금씩 파보고, 웹 개발자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완전히 전향하기 위해 브라우저에 대한 지식을 그때 가서 처음 알게 되었고, 최적화가 이런 거구나, 이게 react구나, 이게 javascript 구나 하며, 컴포트존에서 놀고 있던 스스로를 후회하며 채찍질하며 이스트소프트라는 회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컴포트존을 깨닫게 된 건 첫 이직 후 사내 모든 사람이 내가 다니던 회사에 있던 사람들에 비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고, 비전공자 출신, 어린 나이 할 것 없이 모두 빛이 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때는 다행히도 조급한 마음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컸습니다. 참 배울 게 많은 사람이고 동기부여가 많아지게 되어 살면서 제일 열심히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 번째 컴포트존을 깨고 싶었습니다.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데, 레거시가 많거나 도전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곳에서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백엔드 개발자분들이 편하게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React 기반 게시판 보일러 플레이트를 제공해 주었고, 팀업이라는 클라이언트 채팅 서비스를 웹 채팅 서비스로 호스팅 후 시연하여 웹 채팅 서비스를 제안하기도 하고(결국 시연까지만…), 첫 Next와 typescript 도입, 설립 이후 30년 만에 최초로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한 서비스를 출시, 사내 오거나이저로 활동하여, 회사 내 북 스터디를 총 3회 진행하기도 하고, GDG 활동을 하면서 오픈소스 스터디를 진행했던 경험을 팀 내에서도 공유하고 싶어 오픈 소스 스터디도 진행해 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기여를 해보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보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방향성과 멘탈 모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 ‘역량’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네요. 생각하기에 나의 ‘역량’은 내가 학습하고, 배우고, 깨고 부셨던 “내 경험을 공유”하는 것. **대상자가 누가 되었던 내가 말하고 쓰는 모든 것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고 시너지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역량’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